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오드는 자신의 수호자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질구레한 것들에서부터 중요한 것들까지 말이다. 예를 들면 썰렁한 농담을 좋아한다던지, 무게감있는 옷은 싫어한다던지, 걱정될 정도로 잠을 안 잔다던지, 죽음에 거부감이 있다는 점이라던지, 전투에 매우 능숙해보인다던지. 그리고 ㅡ
"오드, 부탁할게 있어."
"뭔가요 수호자?"
테르하가 잠시 뜸을 들이자 오드는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뜸을 들인다는건 평소의 테르하답지 않았다. 무슨 부탁이기에 저러는 것일까.
"날 수호자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해서."
의외의 부탁에 오드는 눈만 몇 번 깜빡였다. 예상하기 어려운 사람임은 알고 있었지만 수호자를 수호자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니. 그렇다면 수호자를 뭐라 불러야한단 말인가! 이런 문제점을 오드가 언급하자 테르하는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는 명쾌한 해결책을 바로 제시했다. 하지만 명쾌한 해결책에도 오드는 망설였다. 수호자를 정말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오드는 테르하가 왜 수호자라고 불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지 알고싶었다.
"왜 수호자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건가요?"
오드가 답변을 요구하듯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테르하는 눈을 굴리며 그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은 상황을 피할 변명거리를 찾는 아이와도 비슷했다. 하지만 오드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계속 테르하의 도망치는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 날의 오드는 자신의 수호자, 아니 테르하가 '수호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 문장만 몇 번을 말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오드는 이를 세는 것 조차 그만두었다. 외부에서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날들을 세는걸 그만두었을 때 같이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도시 밖은 위험했다. 자원이 부족한 몰락자들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올지 몰랐다. 그리고 실제로 몰락자들의 공격을 받은 일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세지 못할 정도일 것이었다. 수호자는 오드의 도움을 받아 불사의 존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오드가 원하지 않았다. 줄타기를 하는 듯한 위태위태한 여정에 불안한 오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수호자, 테르하-4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향하던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잠시동안의 여정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오드는 그의 수호자가 생전 세상과는 달라진 세상을 알아보고 싶어서, 그 변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도시로 향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오드는 테르하가 이렇게 방랑하는 목적성에 대해 아무런 추측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테르하-4는 말수가 적았다.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그에게서 반응이 돌아온다해도 대부분 짧은 대꾸에 불과했다. 딱히 오드를 경계하거나 성격이 나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오드의 관찰에 따르면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오드가 생각하기에 그는 오히려 차가운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정많은 쪽에 가까웠다. 이 기나긴 목적지 없는 여정 도중 둘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종종 마주쳤고, 그 때마다 테르하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의 할 일이 끝나면 미련없이 떠나고 다시 정처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게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드는 종종 테르하의 생각에 대해 물었지만 썩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수호자라지만 오드는 여전히 테르하-4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흐르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오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수호자가 악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 뿐이었다.
둘의 여정에 특이점이 생긴 날은 여느때와 다름 없던 날이었다. 여느 때 처럼 둘은 기묘한 여정길 위였고, 해는 머리 위를 넘어 다시 서쪽으로 지기 시작할 때 쯤이었다. 하염없이 걷던 테르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오드도 그를 따라 주변에서 맴돌았다. 잠시 쉬었다 가려는 참이겠거니, 하며 오드가 주변을 탐색하려던 때 수호자는 절대 꺼내지 않을 것 같던 문장을 내뱉었다.
"이제 도시로 가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인지는 지금의 오드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수호자가 이야기해준 적이 없기 때문에.
생기를 잃고 말라비틀어진 식물과 인류가 바쁘게 대피하며 남긴 폐허만 존재하는 황무지에서 고스트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록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장소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적어도 고스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스트가 그를 발견한 장소는 꽤 트여있는 장소였다. 먼 옛날 공터였을 공간은 시간에 풍화된 유해들과 그들이 떨어뜨린 무기들, 그리고 이곳저곳 흩어진 탄피가 가득했다. 분명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리라.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 고스트는 자신의 목표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태어난 순간부터 찾고 있던 대상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외형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고스트는 그가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고스트들은 수호자를 찾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확신감과 함께 공터에 떠있는 작은 빛의 드론은 침착하게 자신의 수호자를 부활시킬 준비를 했다. 수백, 수천번을 상상해왔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고스트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드디어 당신을 찾았어요, 나의 수호자.
고스트의 수호자는 인간도 각성자도 아닌 엑소였다. 인공적인 푸른 빛을 내는 눈이 서서히 밝아지고 이윽고 그가 몸을 반쯤 일으키는 모습을 고스트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혹시나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면서. 다시 생명을 되찾은 엑소 수호자는 다소 혼란스러워보였다. 고스트는 혼란스러워보이는 그에게 그가 수호자라는 것, 자신이 그의 고스트라는 것,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돌아온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는 찰나,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엑소 쪽이었다.
"오드...?"
그 날 이후로 고스트의 이름은 오드가 되었다. 그러나 오드가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다.